본문 바로가기
  • All about Paris's culture life
프랑스 라이프

예술의 다리 퐁네프 다리 그리고 시테 섬에서 보낸 나의 20대

by Sera.Lee 2023. 1. 30.
반응형

20대 초반에 파리에 유학을 왔었다. 5월에 유학을 왔다. 파리가 가장 아름다운 5월. 파리에 미리 와 계신 학과 선배님들이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셨다. 그리고 그해 초여름 나는 선배님들과 파리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파리의 여름날 밤, 그 살가운 맛에 취하고 싸구려 포도주에 취해 밤새도록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가 그립다.

1. St-michel notre dame역 분수대는 만남의 장소이다.

파리에 여행을 와서 생 미셸 노트르담 역을 지나치지 않았다면 파리에 왔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은 명소 중의 명소이다. 파리에 와서 나의 첫 약속 장소는 바로 이곳의 분수대였다. 분수대 조각상을 이렇게 휘황찬란하게 만들 일인가, 싶지만 이 분수대를 처음 봤다면 한동안 눈을 못 떼고 멍 때리게 되어 있다. 장담할 수 있다.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것임에 분명하다.
이곳에 소르본 어학원이 있어 나는 매일 출근하다시피 드나드는 곳이었지만 어학원이 아니더라도 나는 매일 와야 하는 곳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생미셀에 오래된 예술 영화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곳에 영화 전문 서적만 파는 서점까지 있어 씨네필에게 생 미셸은 영화인을 위한, 영화인에 의한 영화인들의 집합소 같은 역할을 했다. 심야 영화 한 편 본 후 근처 바에서 포도주 한 잔 놓고 밤새 열띤 토론이 가능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립다.

Félix Vallotton - Le Pont-Neuf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바에서 포도주를 마시겠는가. 파리는 저녁 8시가 되면 주류 판매가 금지였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센강 주변은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리 마트에서 사놓은 5유로짜리 포도주 한 병을 들고 퐁네프 아래 시테섬으로 종종 갔었다. 파리를 진정으로 즐기고 싶다면, 해가 지고 퐁네프 다리 아래로 내려가 그곳에 모인 파리의 젊은이들을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화장실 같은 건 없다. 그러니 적당히 마시던가 아니면 근처 공중화장실을 미리 섭외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예술의 다리는 연인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이전의 예술의 다리는 철조망에 자물쇠로 빽빽하게 수놓여 있었다. 2008년부터 예술의 다리 난간에 세계각국의 커플들이 '사랑의 자물쇠'를 달기 시작해 2015년에는 보기 흉할 정도까지 이르자 파리 시청은 그 흉측한 쇠덩어리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2015년 6월 1일 자물쇠 난간은 영구적으로 제거되었고, Jace, eL Seed, Pantonio 및 Brusk9의 예술 작품 전시되기도 했는데 그해 10월 유리 패널로 대체되었다.

pont des arts

오래전, 예술의 다리에 자물쇠가 서너개쯤 달려 있을 때, 저녁이 되면 파리의 젊은이들이 술을 가지고 이곳으로 모여들곤 했는데 주말이면 인산인해로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후 2008년도부터는 가방에 맥주나 와인을 몰래 가져와 마셔야 했는데 이유는 경찰들이 시간마다 순찰을 돌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술을 뺏거나 못 마시게 금지한 적은 없었는데 파리 6구 시장이 2012년 5월 10일부터 술을 소지, 술을 마시는 행위, 술을 가져오는 것까지 모두 벌금으로 엄격하게 금지시켜 버렸다. 하긴, 사건사고가 많기는 했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미성년자들도 꽤 있었고, 만취해 센강에 뛰어든 사람들도 많았는데 작은 사고들이 큰 사고로 이어지자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 같다.

Pont des arts 자물쇠 철거 전


퐁데자르, 예술의 다리 주변에는 파리의 크고 작은 예술학교들이 밀집해 있었고, 예술학교 학생들은 주말이 되면 다리 위에 모여 포도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곳이기도 하다. 술집에서 마시는 술값이 워낙 비싸니 파리 학생들은 보통 집에서 혹은 길에서 와인을 마셨던 것인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3. 퐁네프 다리만 건너지 말고 다리 아래로 꼭 내려가 보라.

Pont Neuf

생미셸에서 노트르담 성당으로 가려면 시테 섬을 지나야 한다. 시테 섬 옆에 또 하나의 큰 섬인 생-루이 섬이 있는데 거긴 자주 안 가게 되더라. 티팬티만 입은 아저씨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것을 몇 번 보고는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퐁네프 다리는 말해 뭐 하나. 한국인에게 너무나 유명한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수년간의 보수공사로 영화에서 나오는 것만큼 센치하거나 운치가 있지는 않다. 그래도 시테 섬으로 내려가는 통로는 살짝 비밀의 화원으로 내려가는 기분이 들게 하고, 시테 섬으로 내려와 퐁네프를 올려다보면 주변 건물들과 함께 잘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ile de la cité 시테섬

학과 친구들과 함께 시테 섬 끝자락 나무 아래 앉아 시간을 자주 보냈었는데, 하루는 핸드폰을 센느 강에 퐁당 빠뜨린 적이 있다. 난간이 없어 소지품을 강에 떨어뜨리기 쉽고 의외로 멀쩡한 사람들도 일어서다가 강에 잘 빠진다. 여름날에는 샌드위치를 하나 사 들고 가서 점심을 때우기도 하고 저녁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망한 전시회에서 본 현대미술, 최근에 발견한 알쓸신잡스런 책, 듣보잡 클래식 영화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 ~ 옛날이여. 근데 과연 이건 그냥 옛날 일일까? 이 글의 시제는 이미 지나가 버린, 끝이 난 과거완료가 아니다. 아직도 파리 사람들은 파리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함께 예술적 혹은 문학적인 토론을 하고 여행과 이성에 대해서도 뜨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퐁데자르 위에서 음주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젊은 예술가들의 가방 속 작은 위스키병까지 간섭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상방뇨를 법으로 막을 수 있었던가?

파리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5월~8월 어떨까 싶다. 덥긴 하지만 파리의 여름밤을 무엇이 비할 수 있을까. 그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처럼 한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는, 살가운 파리의 여름 밤공기 속으로 들어가 보라. 머뭇대지 말고.

반응형

댓글